우정총국에 왔다.
조계사 바로 옆, 인근에 ‘도화서 터’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이다. 단층짜리 작은 기와 건물이다. 조계사와 인사동 길을 그렇게 지나갔건만 우정총국은 낯설었다. 당연히 조계사 부속건물이려이 하고 지나쳤었다. 알고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이라고 한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장난감 자동차들로 집배원 차량 변천사도 보여주고. 최초의 우표와 우정총국 설립의의가 기록된 승정원 일기 판본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각국과 통상을 한 이래 내외의 관계와 교섭이 날로 증가하고 관청과 상인들이 주고받는 통신이 번성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편의 시설이 없으면 원근을 막론하고 소식을 연럭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에 명하노니, 우정총국을 설립하여 연해 각 항구를 내왕하는 우편물을 취급할 뿐만 아니라 내륙의 우편까지 점차 확장하여 공사에 이롭게 하라. 고종 21년 (1884년)
1884년이면 <삼총사>를 쓴 뒤마가 죽은 뒤 10-20년이 흘렀을 때이고. 쥘 베른이 노년을 보내고 있을 때 쯤이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일어나고 1912년 타이타닉이 침몰하기 20-30년 전쯤이기도 하다.
별 생각없이 들어간 무료관람 유적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도 함께 거론되는 이름이었구나. 심지어 우정총국 초대 국장이었구나.
그 해 12월 우정총국 낙성식 연회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홍영식을 비롯해 김옥균, 박영효 개화세력이 주도한 정변. 나라를 위해 수구세력의 조정이 필요하고 넓은 세상 근대화된 신문물을 받아들여야한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하던 사람들인데. 너무 일본을 믿었고, 순진하고, 급하며, 어설펐달까. 그것도 민씨 등 사람을 죽이는 일을 계획했고 실행하는 큰 일 이었는데. 중국이나 일본이나 믿을 놈 하나 없는데 일본만 믿고 일을 도모했다니. 한숨이 나오고 안타까웠다.
근대사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참 많긴 했다. 갑신정변. 헤이그 특사. 어른이 되고 보니 삼일운동도 참 신기하다. 만주 독립군도 그렇고. 그래서 또 더 대단한 것이긴 한데. 터무니 없는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하는 것이긴 한데. 사람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정말 갈 길이 멀어 보이는… 나도 성공보단 실패를 많이 하는 사람인데 왜 이런 생각이 드나…. 야튼.
오늘 여기 와보니. 그래도 그들이, 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이렇게 기념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다는게 신기하고도 좋았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어쩌다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가. 조계사 정문 사천왕 세련된 작품에 놀라고. 국화꽃 향기에 기쁘고. 아이의 덜렁댐은 내 업보인가 싶은 날. 의외의 발견에 이렇게 끄적끄적한다.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아들이 지하철타고 안국역으로 갔다. 한 달에 한번 가는 역사체험의 일환으로, 오늘은 근대사 현장을 둘러본다고 했다. 월 1회 정도 에너지 넘치는 역사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지하철에서 만나 데려가주신다. 딸도 이렇게 팀이 꾸려지면 좋겠는데 잘 안된다. 본인이 하고 싶지 않고 하기도 하고..
오늘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들이 아빠와 시골 증조할머니댁에 가기로 했었다. 오후 1시 이후 버스표도 사두어 지체할 시간이 없었건만. 아이는 선생님과 함께 들른 우정총국에 가방을 두고 나왔다. 12시 점심시간이 겹쳐 문을 닫은 시간동안 지체하면 버스를 놓칠 것이고. 나중에 전화연결된 우정총국에선 가방을 일주일씩 보관하기 어렵다했다. 에효. 결국 내가 가고, 나의 시간만큼 다음주 평일 핸드폰 타임을 빼는 것을, 나는 비용으로 아들에게 요구했다.
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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