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과 50번째 사이 생일 아침이다.
생일 선물로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고 혼자 집을 차지했다. 혼자 조용한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건데. 어쩌다 보니 청소하고 이제 물 끓이고 앉았다. 밥을 스스로 해 먹고 머무는 곳을 스스로 청소한다는 것은 가끔 어떤 의식 같다. 나 자신에 대한 예의랄까. 아주 대단하진 않아도 기본적인 것.
청소하고 빨래 돌리는 와중에 영화 LEO가 자꾸 생각났다. You are not that great이란 평화로운 노래 장면이 특히. 나이 지긋한 LEO라는 도마뱀이 부잣집 여자아이에게 너네 집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힘 빼, 나긋나긋하게 불러주는 그런 노래. 또 다른 생각도 이어졌다: 자녀가 나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내려놓으면 된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진단 얘기도 떠올랐다. 정말 그런 마음이 가능하다면. 내가 아이에 대해 고민하는 것, 내 부모가 나에 대해 걱정하는 것, 그 많은 압박과 잔소리 및 못마땅함에 힘이 빠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 많은 욕심들에도 바람이 좀 빠질 듯.
조용한 집, 햇빛도 있고, 따뜻한 보리차도 있으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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