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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일기/그곳에서

금토일 경주여행 - 토요일

by 은지용 2021. 6. 24.

 

대릉원(천마총) - 경주빵 - 박물관(에밀레종) - 보문단지 숙소(점심) - 석굴암 - 불국사 - 보문단지 숙소(저녁) - 또 첨성대

 

토요일 아침. 부슬비가 내린다. 우산을 쓸까 말까 고민되는 정도의 비. 애들 아빠는 기차타고 경주로 내려오는 중이다. 오후에 비가 그친다니, 오후에 불국사, 오전엔 박물관을 가야겠다 싶었다. 부지런히 움직여 9시 전에 도착한 경주박물관은 그러나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10시에 연단다. 게다가 코로나로 입장인원 제한을 위해 예약도 해야했다.  

 

차를 돌려 대릉원으로 갔다. 어제 밤에 봤던 그 무덤에 간다하니 아이들은 뭔가 으스스한 모양이다. 무덤 속으로 들어갈거냐고 연신 되묻는다. 대릉원 입구에 들어가서는 그러나 언제 들어가냐고 보채고 재촉한다. 무섭지만 얼른 보고 싶은 것인가? 당장 경험해서 해치우고 싶은 것일까? 그냥 보채보는 것인가?

 

대릉원에는 천마총을 포함한 23기의 고분이 모여있다. 거대한 쌍봉의 황남대총, 삼국유사에 댓잎군사나 김유신 장군 묘와의 교신 등의 이야기가 있는 미추왕릉도 이 곳에 있다. 이 중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금관이 출토된 천마총이다.

 

천마총 안은 출토 당시가 재현되어 있다. 출토당시 피장자의 살과 피는 이미 흙이 되어 있었겠지. 그 몸에 치장했을 여러 장신구들이 금관을 포함하여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널려있다. 물론 모조품으로. 진품은 경주박물관 등지에 있는 것으로 안다.

 

금관은 출토당시 머리 위가 아닌 얼굴 부위에 있었단다. 고분 내 해설가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아마도 왕이 죽고 무덤 축조에 시간이 걸리면서 죽은 왕의 모습을 치장하기 위해서로 추정한다고 했다. 조문자에게 살아생전의 위엄은 온데간데 없는 모습을 보이자니 좀 그렇고해서 금관을 얼굴에 씌워 가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고.  

 

연대로 추정할 때 지증왕의 능으로 보인다는데, 또 여러가지 정황상 (순장을 금했으나 순장 흔적이 있는 점 등) 지증왕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황남대총도 신원미상의 어느 귀족부부의 능으로만 알려졌으니, 우리는 그저 역사의 파편으로부터 짐작할 뿐이다. 

 

 

대릉원은 나무와 산책로가 너무나 멋있다. 키 큰 소나무에 구불구불 산책길과 능이 잘 어울린다. 활엽수도 수려하다. 담 너머 풍경 마저 고풍스럽다. 아이들도 궁금해하던 그 기와지붕 건물들은 일명 황리단길의 상업 건물들이었다. 

 

대릉원 주변에 많고 많은 경주빵을 간식으로 사서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에 온 목적은 오로지 하나 - 성덕대왕 신종을 보기 위해서다.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녹음된 소리로도 울림이 깊었다.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그 종이다. 

 

학교 다닐 때 범종에 꽂힌 적이 있다. 불교 예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범종. 중저음을 바탕에 깔고 높은 음과 여운까지 아우르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히는 에밀레종의 소리는, 녹음된 것이라 해도, 심금을 울리는 떨림이 있다. 높은 소리까지 아우르는 소리는 성덕대왕신종이 유일하다고 들은 것도 같다. 확실치는 않다. 확실한 것은 정말 소리가 깊고 내 명치 안 어딘가의 먼지를 떨어낸다는 것이다.

 

나와 둘째는 그 범종 소리를 대략 1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몇 번은 들었다. 30분에 한번씩 틀어준다는데, 정확히 시간을 지키기보다는 수시로 틀어주는 느낌이었다. 첫째는 박물관 안이 들어가 보고 싶다며 혼자 돌아다녔다....

 

 

 

 

 

식사는 아빠와 합류후 숙소로 들어와 했다. 맛집프리 여행이랄까. 코로나로 가래떡, 밥, 냉동찌게 및 국을 준비해갔다. 맛집을 찾지도 않고, 들르지도 않으니 기분이 묘하다.

 

과연 점심때 비가 그쳤다. 산 허리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관을 보며 석굴암으로 갔다.

 

토함산 중턱부터는 아예 구름 속이다. 구불구불 길에 둘째 속이 불편하여, 중간에 몇 번 쉬어갔다. 바다까지 쨍하게 보이는 날씨를 기대했지만, 이런 무진기행같은 안갯속도 운치가 넘친다. 아이들이 신났다. 진짜 이게 그 구름같은 것이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빈 병 속에 연무를 담고 싶어했다.

 

연막이 쳐진 석굴암은 그러나 아이들의 기대에는 못미쳤던 것 같다. 기도하는 곳이나 기도하는 곳 같지 않은, 여실한 관광지 느낌의 장소. 부처님 오신날 주간이라 연등이 많이 달려있었고, 석굴암 관리하는 사찰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셨다. 연등 밝히면 삼재를 면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석굴암 내에서 자꾸 말씀하시며 접수를 받았다. 천국행 티켓을 파는 것 같은 느낌이 좀 들었다. 또 좁은 공간에 비해 사람들도 많아 석굴암을 감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불교로 세상을 설명하던 신라시대에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 때 사람들에겐 훨씬 더 깊이 와 닿았겠지?!

 

기도하고 사색하는 공간을 여럿이서 나누려니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래도 앞쪽에 위치한 금강역사상은 기억에 남는다. 아이는 금강역사가 좀 무서웠고 안쪽은 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금강역사의 무서움은 이어서 방문한 불국사 사천왕상으로 이어져, 첫째아이 기억에 각인됐다. 아이에게는 책과 영상물로 접한 석굴암이 더 멋있는 것 같다..

 

석굴암 아래쪽, 주차장 가기 전에 불우이웃돕기 성금내고 종을 직접 쳐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종소리는 성덕대왕신종에 한참 못미쳤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토함산 안개 속에 내가 퍼뜨리는 소리.

 

 

석굴암에서 나올 때에는 빠져나가는 차들이 몰려 출구가 혼잡해보였다. 차 안에서 유난히 힘들어하는 녀석들이라 석굴암 주변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오후 늦게 불국사로 내려갔다.

 

토함산 아래 자리잡은 불국사는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됐다. 주차장 직원분에게 몇시에 나와야 하냐 물으니, 문닫기 전에 들어가기만하면 내일 아침에 나와도 된다고 하셨다. 급하게 간식을 구해와서 문 닫기 직전 들어갔다. 그 때가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그 안에 있는 동안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한적해진 불국사는 훨씬 멋있었다.

 

 

조용한 천년사찰에서 첫째는 땅에 막대로 낙서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느린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각자 쓰고 싶은 사람에게. 내년에 도착할 예정이다. 첫째는 쓰지 않겠다 했고, 막대를 들고 좀 둘러보고 오겠다며 또 혼자 어딘가로 갔다.

 

적막한 사찰.

 

어디선가 둥둥 북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서둘러 가보았다. 예불시간인가보다. 그리고 불국사에서는 북, 종, 운판, 목어 사물 모두를 시연하며 예불시간을 알리는 모양이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보였다. 나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운판의 청량한 소리가 다녀온 기록을 남기는 지금도 남아 머릿속에서 울린다.

 

불교신자가 아닌 아이들에게는 예불이 낯설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불경소리까지 듣고 나오면 좋았겠지만, 아이들이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보문단지 내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서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보급하며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또 해먹었다(!).

 

보문단지로 돌아가는 길에 황룡사9층목탑을 테마로 만든 건물이 보였다. 엑스포 기념관이었나.

 

신라시대 저만한 건물이 위용을 드러내며 홀로 서 있었을 때, 신라 사람들은 무슨 느낌으로 그 건물을 바라보았을까. 이쯤이면 불교의 나라, 신라에 대해 아이들도 느낀 바가 있을까. 사실, 나도 좀 막연하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현재를 사는 내게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첨성대, 다보탑, 석가탑, 성덕대왕신종, 석굴암을 보며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디자인 참 잘하네,

이때부터도 참 잘했네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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