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물상/그사람은

부산 남자

by 은지용 2010. 7. 16.
너는 왜 내 남자친구가 될 수 없는가- I씨 <2010. 07 사당역>

부산 사람이다. 사실 나에겐 부산 남자에 대한 표본이 매우 부족하므로, 이것은 매우 편협한 시각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부산은 차라리 내게 동경의 도시다. 해변에 아파트가 서 있다거나, 거기에 걸린 무지개라던가, 아침 시각 도로를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엄청나게 큰 컨테이너 트럭들, 도심 어물전에 누워있는 살아있는 눈 껌뻑 생선, 고등학교 때 오토바이 탄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 떼로 몰려와 어떤 남자애를 불러간 이후 그 아이의 행방은 누구도 모른다는 이야기 등. 이런 것들이 내가 알고 있는 부산의 전부고. 내 주변에, 나와 이야기를 제법 나누는 사람 가운데 부산 사람은 거의 없다. 학교 동아리 선배 중 부산 사람이 하나 있으니까. 부산 남자 표본은 둘이다.


아 맞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정말 말이 잘 통하고 배울 것도 많고 일 잘한다고 생각한 낙농진흥회 홍보실장이 부산사람이었구나. .. 부산우유 지도상무를 하던 강 모시기도 생각난다. 굉장히 사려 깊어 보였는데.. .. 부산 사람 중 통할 것 같다 싶은 사람 꽤 있구나. 뭐 이런 건 쓰다가 깨달은 데다 개인적 인연이 아닌거니까 접고, 통속적인 남녀관계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서.

 

이번 맞선에서 만난 그 치를 포함해 또 다른 한 사람의 동아리 선배가 부산남자다. 이 두 명을 통해 결론을 내리자면. 왠지 모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부산 남자는.

 


살짝 잘난 맛에 살고, 그 본인은 쓰지 않는다 여기지만 말투에 역력한 부산 사투리가 그것이다. 말에 속도가 꽤 있다. 아무리 자취생활을 오래해도 내가 요리해서 먹을 수는 없다는 주의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 가정을 꾸려 산다면, 아이가 밤잠 안자고 울 때 버럭 화낼 것 같은 스타일. 나란히 걷는 것을 어쩐지 부끄러워할 것 같은 인상. 이 중 잘난 맛에 산다는 부분은 아래의 대화로 설명될 듯 하다.

 


: 제가 듣고 나온 바가 워낙 적어서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몇 년 생이세요?

: 75년생입니다.

: 75년생이요?

: . 근데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 ?

: 제 얼굴이 그 정도로 보이냐구요?

: (.. 눈이 동그랗고 입이 작고 몸집도 아기자기하니 동안이란 소리를 좀 들었나?) 아니 뭐..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옷 입는 스타일도 그렇고, 동안이란 얘기 많이 들으실 것 같은데, 그렇죠?

: 하하 네 좀 듣죠.


(
침묵)


 

이게 우리 대화의 시작이었다. 어쩜 그 동아리 선배와 비슷한지. 스스로 잘생겼다고 여기는 부분이 특히 매우 흡사했다. 따지자면, 외모는 비교적 호감형이라 할 만 하다. 잘난 맛에 사는 귀여운 꺼벙이 스타일이랄까? 만화 캐릭터처럼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곧 나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럼, 체크남방에 면바지, 운동화 신고 나왔는데, 당연히 나이보다 어려보이겠지. 나원참. 나도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운동화 신으면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동네 꼬마아이보면서 귀여워죽겠다는 눈빛으로 몇 살?’한다고.’ 어쩌면 자기 나이에 대해선 동안 운운 해놓고선, 내 나이를 얘기하는 시점에선 아무 말 없이 아 네 빠른 80이시구나하며 짓던 알 수 없는 끄덕거림에 빈정 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난 뭐 진심으로 동안이시네요한 줄 아는지, 티셔츠에 면바지 입을 줄 몰라서 하이힐에 블라우스 입고 나온 줄 아나, 뭐 이런 심정?!  왜 혼자만 서비스 받냐고.

 

대화는 뭐 거의 거기서 끝났다. 좋아하거나 인상적인 영화도, 즐겨듣는 음악도, 기억나는 책도 없단다. 만화책을 본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칠석의 나라등에 대해 얘기할 때의 그 당황한 표정. 멍해지는 대화. 여가 시간에 특별히 하는 뭔가도 없다고 하고. 아니 적어도 얘기를 끌어갈 의지는 있는 건가 싶었다. 아래는 우리의 또 다른 대화패턴.

 


(
내가 그치의 전공이나 동아리 생활에 대해 물어본 이후 경제학 전공에 축구부였다고 한다)

: 그 쪽 전공은요?

: - 문화인류학이라구요,
남: 네?
나: 문화인류학이라고, 좀 말랑말랑한 사회학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남: 그런건 미학 아닌가요?
나: 네... 아니 뭐, 미학은 오히려 철학 쪽에 가깝고, 음.. 
남: ??
나: 대략 고고학쪽하고 사회학쪽이 있는데, 사람 사는 패턴 같은걸 연구한다고나 할까요.
: 그런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닌가요?

: 사실 그런 면이 없잖아 있죠, 근데 인문학 대부분이 그렇잖아요.

: 1 더하기 1은 대통령이 해도 2잖아요? 그런 게 좋지, 답 없이 말만 … (그 이하는 들리지 않았다. 맞는 얘기고. 그 순간 예전의 또 다른 공대 동아리 선배가 생각나서. 선 보는 날 전후로 옛날 학교 술자리에서 나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했던 그 선배 생일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7 11.)

 


솔직히 그의 놀랍도록 단순 명료 명쾌한 머릿속과 부산 사투리가 묘하게 귀여워, 조금 호감이 가기도 했다. 경제학과를 졸업해 회계법인에서 일하고, 법인에서 일하기 전에 부산에서 학원 강사를 하며 수학을 가르쳤다는 이력을 설명하는 그의 말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그 즈음 내 머릿속은 특히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에. 또 나와 취향이 매우 비슷하고 그에 대해 즐겁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다는 사실을 내면화하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곧 그의 대화 패턴이 좀 다 벽에 부딪히는 일방적 대화란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 직장이 어디세요?

: 경기도 화성이요.

: 어 거기, 위험한데 아닌가요? 수원 옆이죠?

: 하하, 네 그렇죠 뭐. 비 오는 목요일에 빨간 옷 입지 않으려고요.

: 업체 때문에 몇 번 가봤는데, 엄청 왜지던데, 위험하지 않나요?

: 왜진 덴 왜지고 또 뭐, 거기 워낙 공장이 많으니까, 공단 같은 데는 밤늦게까지 일해요. 또 위험해서인지 몰라도 택지지구에는 골목골목마다 폐쇄회로 티비가 엄청 많이 달려있긴 해요.

: 아니 뭐 논밭만 좍 있고 밤에는 완전히 깜깜하던데?!!

: … (체념) , 저 위험한 데서 일합니다. -_______-

(침묵)


 

: 자리가 많이 불편하신가봐요?

: 아 뭐 이런 자리가 사실 편하기는 힘들죠.

: 그렇긴 하죠.

(침묵)

 


이쯤되면 시간이 아까워지는거다. 이렇게 화창한 7월의 여름 일요일 저녁인데. 왜 나 혼자 이런 벽창호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심정? 그치의 속은 알 수 없었지만, 나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그냥 시덥잖게 맞선경로에 대해 좀 캐다가, ‘그럼 그만 일어나죠?’하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정작 그 때 그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까페에서 나설 때 성큼성큼 앞서 나가던 모습. 조금 더 빨라진 걸음걸이와 마치 본래 있던 약속이라는 듯 사당역에서 한양대까지 택시타고 친구 만나러 갈 것이란 답변 등에서 그의 자존심이 다쳤음을 느꼈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하지만. 도대체 뭘 더 하냐고. 얘기할 것도 없고.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애매한 시간에 약속잡아 근처 까페를 찾은 것도 마음에 안들 경우에 대비한 장치라고 생각했는걸.

맞선남들에게 고하노니, 최소한 대화를 할 마음은 준비해오시라. !!

 




마무리할 시점이 되어가니 불현듯 떠오르는 사실 하나. 제부가 부산 사람이다. 단순 명료한 머릿속은 같은 듯 하지만, 동생과 함께 사는 걸로 봐선 상당히 사려 깊은 부류인데….

 


'만물상 > 그사람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선 혹은 소개팅  (0) 2010.08.08
혈액형과 별자리  (0) 2010.08.08
그사람은 Intro  (0) 2010.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