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든 콜필드는 학교에서 또 쫓겨났다.
이번이 대략 네 번째다. 이번 퇴학의 이유는 낙제. 성적이 안 나와서다. 그는 학교를 또 그만두게 되었지만, 내 뜻과 아무 상관없이 흐지부지 부유하듯 학교를 떠나는 것은 더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름의 작별의식을 치르려고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추운 날이었다. 학기말 학교 대항전이 열리는 운동장 위쪽에서 열광의 도가니에 쌓인 학교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 홈팀 경기의 이점을 살려 대대적인 응원이 펼쳐지는 전통 명문 펜시고등학교의 대동단결 현장인데, 그에게는 그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상대팀 기분을 오징어로 만들어버리는 치사한 수법이다. 그래도 애써 뭔가 아련하거나 좋은 것을 떠올리려 한다. 이제 이 학교와는 마지막이니까. 곧 작별할 테니까. 이곳에 아쉬움을 느낄만한 감정 건덕지, 혹은 기억 조각 같은 것을 더듬어 보고 있다.
어쨌든 나는 그 우스꽝스러운 대포 옆에 계속 서서 엉덩이가 떨어져 나갈듯한 추위에 떨며 시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시합자체를 열심히 보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거기서 뭉그적거린 진짜 이유, 나는 어떤 작별의 기분을 느껴 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떠나는 줄도 모르고 여러 학교와 장소를 떠나왔다는 거다. 그게 싫다. 슬픈 작별이든 나쁜 작별이든 상관없으니 어떤 곳을 떠날 때 내가 그곳을 떠난다는 건 알고 싶다. 그걸 모르면 기분이 훨씬 더럽다.
운이 좋았다. 갑자기 내가 그 지옥같은 곳을 벗어나고 있다는 걸 아는 데 도움을 주는 뭔가가 떠올랐으니. 갑자기 저번에, 10월 무렵에 나하고 로버트 티치너하고 폴 캠벨하고 교사 앞에서 풋볼을 던지던 게 기억났다. 좋은 애들이다. 특히 티치너는. 저녁식사 직전이었고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계속 공을 던졌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이제 공이 거의 보이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하던 걸 멈추고 싶지 않았다.
결국 멈춰야 했다. 생물을 가르치는 이 선생님, 미스터 잠베시가 교사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우리더러 기숙사로 돌아가 저녁 먹을 준비를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기억할 수 있다면 필요할 때 작별의 느낌을 얻을 수도 있다 - 어쨌든 대부분은 그럴 수 있다. 실제로 그 느낌이 생겨난 순간 나는 몸을 돌려 언덕 반대편으로, 우리의 스펜서가 사는 집을 향해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p.14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민음사 (2003)
그는 어느 날 학교에서 하릴 없이 공을 던진 것을 기억해 냈다.
아마도. 공 던지기는 오후 늦게 시작했을 것이다. 벽돌로 된 펜시 고등학교의 교사 숙소 벽면에는 담쟁이덩굴이 무늬를 드리웠을 것 같다. 단풍이 한창인 10월의 어느 날 적당히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고, 교사 숙소 뒤쪽으로 노을이 지면서 건물이며 하늘이며 온통 붉고 노란색을 띠었겠지. 어둠이 내려오고, 색이 사라져 가면, 하늘은 설레도록 짙푸른 파랑을 드리우기 시작했을 것 같다. 어쩌면 가로등이 켜졌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배가 고픈듯했지만, 그 약간의 결핍감이 풍경을 더 강렬하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3명의 아이들 중 이런 감성을 알아채는 아이가 있었을테고, 티치너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먼저 포기하기 싫어서, 오기로 공 던지기를 계속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약간씩은 모두 이런저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멈추기 싫었다. 얼핏 이제 그만할까 싶기도 했다. 절정의 순간은 이미 지나친 것도 같다. 그런데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았다. 딱 그 때 학교 선생님이 밥 먹을 준비하라고 소리쳤다. 밥. 그 한 마디에, 현실 착지 가이드라인이 생겼다. 저녁밥. 아이들은 내심 안도했을 것이다. 그날 식사 메뉴는 뭐였을까.
홀든이 찾아낸 기억의 조각에서
나는 내 기억의 조각을 찾아냈다.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현재에 빠져든 기억.
어둠 속에서 나침반이 되는 아무 어른의 무심한 호의.
20대 초반에는 보통 6월에 여행을 했다. 6월말이면 보통 초중고교의 학기 중, 대학교 방학의 시작, 장마 직전이었다. 여행 비수기라 숙박료도 저렴했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서 돌아다기에 참 쾌적했다. 어쩌다 함께 여행하게 된 친구 셋과 전북 변산 국립공원을 들렀을 때다. 내소사의 허리굽은 나무와 뒤편으로 펼쳐진 산을 보며 참 아늑하게도 생겼네 싶었다. 우리는 산을 오르기로 했고, 산속에서 내소사를 내려다보거나 호수를 보면서 역시 참 아늑하다 싶었다. 초여름 장마 직전의 산은 초록 에너지로 넘치면서도 편안했다.
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조용했다. 내소사 뒤쪽으로 올라가서 남여치로 내려왔다. 중간에 변산8경 중 하나라는 낙조대가 있었다. 인근에 암자가 있어서, 정 잘 곳 없으면 암자에서 자면 되겠네 하는 농담도 했다. 숙박은 내소사 앞에 잡아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올라왔던 터다. 공주부터 땅끝까지 가는 것으로 계획됐던 여행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산행은 오래간만에 누리는 여유였다.
낙조대에서 여유를 제대로 부렸다. 하늘이 노을로 타오르는 것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냥 거기서 뭉그적댔다. 명색이 낙조대라는데 낙조를 보고 내려가야할 것 같았다. 중간에 끊기 싫었고, 끝까지 남아있었다.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해가 거의 다 내려간 후 깨달았다. 이곳은 산 정상이고 우리는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해가 진 후에는 바로 어둠이 몰려올 것이라는 사실을! 숙소로 돌아갈 버스도 끊길 거라는 현실을!
그야말로 산을 달려서 내려왔다. 랜턴이나 밤의 추위를 막아줄 장비도, 배고픔을 달래줄 간식 하나 없었다. 무조건 산 아래로 가야했다. 시간이 더 늦으면 내소사 앞으로 가는 버스도 끊겨서 그 먼 길을 걸어서 가야만 할 것이다. 아니 버스는 이미 끊겼을 것이다. 지금의 변산이 아니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서해대교 개통 전, 약 20년 전의 전북 변산이다. 스마트폰 지도검색 같은 것도 없던 때다.
다행히 차가 다니는 길에 다다랐다. 여행 비수기의 깜깜한 시골길에는 차가 거의 없었지만. 우리는 어떤 아저씨들의 작은 자동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아저씨들이 더 놀랬었다. 아니 어쩌다 이 시간에 여자 넷이서 여기에 이러고 있냐고.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현재의 감상에 빠져서 허우적 대는 모습이 미련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 나는 그 덕에 길 잃은 젊은이들을 기꺼이 도와주는 친절한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행에서 그런 어른들 좀 만났다. 첫 날. 공주 강가에서 배낭 하나 메고 야영하겠다고 버티는 우리에게, 거기 그렇게 있으면 큰일 난다고 자기들 텐트에 들어가 자라며 아침까지 밖에서 낚시한 아저씨들이 있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숙박비를 많이 깎아주던 아줌마도 있었고. 순찰 길 끝까지 우리를 태워준 경찰도 있었다. 그 어른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렇게 다니면 무섭지 않냐”였다. 무엇을 무서워해야 하냐 되물으면 다른 사람들이 무섭지 않냐는 것이다.
이 날의 기억에 대해 나는 부모님과 얘기한 적이 없다. 당시 나는 학과 교수님 일행과 답사를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이건 나와 친구들끼리만 하는 이야기다. 뭐 우리는 나름 백제 유적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었기에, 답사는 맞았다. 그때 부모님께 꺼내봐야 일단 여행을 못 갔을 것이고, 위험하다며 혼나기만 했을 것이다. 노을이나 여행의 감상을 궁금해하거나 공감하기는, 부모로선 도무지 어려웠을 테니까 말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이런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잘 것 같다.
부모 몫이 아니다.
1950년대 방황하던 홀든이나
1990년대 여행하던 나와 내 친구들이나
2020년대 방황할 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이는
아마도 부모가 아닌 다른 아무 어른일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파수꾼의 몫이다.
홀든은 언덕을 내달려 스펜서 선생님께 갔다. 어쩐지 짠하다. 그는 곧 학교를 나와 짧은 여행을 시작하게 될 터다. 책 <호밀밭의 파수꾼> 대부분을 이루는 그의 2박3일 뉴욕 방황기 말이다. 책에서 홀든은 스스로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다. 호밀밭에서 신나게 놀다가 곤경에 처한 아이를 도와주는 파수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넓게 펼쳐진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 놀고 있다. 넋 놓고 놀다가 호밀밭 끝 절벽에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 누구도 고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노는 것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같이 놀 필요도 없다. 그는 그런 어른,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했다.
홀든은, 작가는 커서, 그런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커서 어떤 어른이 되었던가. 지켜주는 사람이 되었나. 혹시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어른이 되진 않았나. 혹은 때때로 군림하고 싶은 어른이 되진 않았나. 아니 지나치게 참견하고 있던가. 아직 어른이 되려면 먼 것도 같다. 하긴 가끔 보면 내 부모님도 아직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나는 오죽하겠는가.
이 정도면 괜찮은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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