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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일기

해리포터 3편

by 은지용 2023. 10. 25.

시간의 이편
(스포일러 있습니다)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 버튼 이야기, 테드 창의 단편집에 등장하는 미래 또는 과거로 가는 문 이야기,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간이 나오는 인터스텔라, 스타워즈 반란군 시리즈의 어느 시간으로든 닿을 수 있는 포털 이야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아직 못 봤는데 이것도 재미있겠지요?! 최근 디즈니의 로키 시리즈도 시간여행 이야기를 다룬다던데, 시간 왜곡은 2000년대 인기 테마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은, 확실히, 균등하게 흐르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재미없는 것을 하는 시간은 더디게 흐르죠. 좋은 기억은 계속해서 반복될 수 밖에 없고, 너무 싫은 기억은 개인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감정의 시대, 개인의 시대에는 나의 감정에 따라 시간도 다르게 갑니다. 그것은 반복되기도 하고, 되돌아가기도 하며, 심지어 통째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오늘 저를 이렇게 끄적이게 한 것은 영화 해리포터 3편, 아즈카반의 죄수 이야기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책보다 영화를 먼저 봤는데, 영화가 참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고 이야기는 빠져들더라고요. 그저 3편을 정점으로 4편부터는 너무 어둡고 고난 시리즈가 되는 것 같아 즐겨 찾지 않게 됐지만요. 요 3편 만은 대략 5번은 넘게 본 것 같습니다. 2주 전엔 둘째와, 지난주엔 첫째와 보면서 2번의 카운트를 올려서 대충 5번입니다.
 

이 이야기를 볼 때 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음에 와 닿는 두 가지 메시지 덕이죠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간 +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 자신.
  

해리와 가족이 되고 싶어하는 시리우스 블랙. 그는 누명을 쓰고 디멘터들에게 처형당하기 직전입니다. 그의 무죄는 해리와 친구들이 알고 있지만,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디 증거가 되나요. 현명하고 현명한 덤블도어는 아이들을 믿어줍니다. 또한 그 말이 힘이 없다는 것을 알지요. 그는 현재로선 시간이 없다며 해리 옆에 있던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헤르미온느에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목걸이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목걸이는 좀 더 많은 수업을 듣기 위한 수단으로 허락됐던 것이었고, 덤블도어와 맥고나걸 교수를 제외한 모두에게 비밀이었습니다. 야튼. 이 시각이 밤 12시 5분 전. 그들의 시간 여행이 시작됩니다.

 

 


'What we need',
said Dumbledore slowly,
and his light-blue eyes moved
from Harry to Hermione,
'is more time'.
 


영화에선 좀 더 멋있는 말을 덧붙였더군요 :
 

"Mysterious thing, Time.
Powerful,
and when meddled with,
dangerous."

(meddle : (감당할 수 없는 것에) 손을 대다) 
 

사진: 네이버 영화 스틸컷



시간에 손을 댈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이 있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말 것. 사실 그렇습니다. 한 세계에 나 혹은 당신이 둘이 되는 경험은 너무 이상합니다. 제 아이가 동시에 둘씩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부모가 둘 씩 늘어나거나 제가 둘이 되어도 경악스러울 듯합니다. 다시 해리포터 이야기로 돌아가서,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목걸이를 돌려 같은 날 저녁 7시 30분의 호그와트 학교에 왔습니다. 
 
그 시간은 자존심 센 히포그리프, 벅빅이 처형되기 직전이었네요. 
 

사진: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야기 앞쪽에서 해리가 해그리드 수업시간에 벅빅과 인사를 나누고, 사자 새처럼 생긴 벅빅 등에 올라 타 신나게 호수 위를 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때 해리가 못마땅한 말포이가 깝죽대다가 벅빅한테 팔을 다쳤거든요. 말포이 아빠가 한 빽하는데, 아들 말포이가 다치니 사형을 주장했고, 그게 받아들여진 겁니다. 덤블도어도 어쩔 수 없었죠.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벅빅을 보살피는 해그리드도, 해그리드를 보살피는 덤블도어도, 마법부 룰을 따르는 장관도 곤란하지 않은 시점에 벅빅을 탈출시킵니다. Bravo.


 
덤블도어가 구체적으로 시계를 3 바퀴 굴리라 한 것은 벅빅부터 구하란 얘기였네요. 그러나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주 목적은 벅빅이 아니었어요. 현재의 그들은 벅빅이 7시 30분에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간을 거스른 것은 시리우스 블랙을 구하기 위함이었죠. 어떻게 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남의 눈에 절대 띄지 않으면서.
 

시리우스 블랙은 해리 포터의 대부로, 사실 그의 부모님을 볼드모트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누명을 쓴 것이죠. 해리도 이야기의 후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책과 영화에 있습니다. 다만 시리우스 블랙과 그들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이 영화와 책이 살짝 다릅니다. 영화가 좀 더 헤르미온느 잔소리를 듣지 않고 규칙에 파묻히지 않으면서, 해리에게 좀 더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것 같습니다. 전 영화 쪽이 더 좋네요.
 

영화에선 미래(?)에서 온 헤르미온느가 늑대 소리를 내서 과거 혹은 현재의 해리가 늑대인간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고, 쫓아온 늑대인간은 벅빅이 쫓아줬고, 디멘터로부터 해리와 시리우스를 구하는 것은... 미래로부터 온 현재의 해리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를 미래의 해리라고 해야하는지, 그곳에서 디멘터의 키스를 받는 아이가 과거의 해리라고 해야 하는지 좀 헷갈리긴 합니다만.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함께 나를 구합니다.

나를 구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셈이지요.

 



 
해리가 사용한 마법은 Expecto Patronom. 내가 가진 강력한 행복의 기억을 떠올려 쓰는 방어 마법입니다.

그 기억이 꼭 진짜가 아니어도 써먹을 수 있더군요. 해리가 처음 이 마법에 성공했을 때 부모님이 자신을 보며 웃고 이야기 하는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의 부모님은 그가 아기였을 때 돌아가셨으므로 진짜 기억은 아니죠.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 가능한 모양입니다.
 
그의 패트로누스는 빛나는 숫사슴의 모습을 하고 보름달이 뜬 밤의 호수를 달립니다. 그렇게 디멘터를 쫓아버리고 시리우스와 해리 자신을 구합니다. 
 

나의 기원이 엄마 아빠에서 비롯되긴 합니다.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에서 오긴 합니다. 그래도. 문제에 처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지요.

해리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모습이, 죽은 해리의 아빠가 기적처럼 현현하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었습니다. 나의 발견. 나의 각성이랄까요.

 
해리는 말합니다.
이미 한번 해봤기에 내가 해낼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장난 같지만 영화 속 현실에선 진짜였죠. 어쩌면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것도 완전하고 진지한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쨌든 말이죠. 나의 모습이 그렇게나 멋지고 당당하다면. 밤의 호수 위를 달리며 빛날 수 있는 모습이라면. 보는 이 하나 없고, 누군가 내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다 해도. 그래도. 너~~~~ 무나 뿌듯할 것 같습니다.
 
 




추신. 
 
해리포터 3편을 처음 봤을 때 호수 저편의 구원자가 해리의 아빠 제임스 포터같다는 강렬한 느낌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희한해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작가의 필력인지 감독의 능력인지. 엇 저것은 해리의 아빠?! 싶었습니다. 물론 감상 차수가 올라갈 때마다 그 느낌은 희미해지고, 느낌보단 기억만 남아있네요. 최근에 함께 본 아이들도 엇 저것은 해리 아빠?! 하는 걸 보면 저만의 느낌은 아닌 듯해요.
 

생각해 보면 이번 에피소드에선 해리더러 넌 아빠를 빼다 박았구나 하는 대사가 많았어요. 눈만은 엄마라고 덧붙이면서요. 그리고 해리 아빠 친구들도 대거 나왔습니다. 늑대인간 루핀 (moony), 개로 변할 수 있는 시리우스 (padfoot), 쥐로 변할 수 있는 피터 (wormtail). 이번 에피소드의 특별 아이템, 도둑지도 제작자가 Moony, Padfoot, Wormtail, Prongs였던 점을 생각하면, 해리의 아빠 제임스는 뿔(prongs) 달린 동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직감적이지 않고 뭔가 어려워요. 더 쉬운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작가나 감독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과연 그 장치들이 뭐였는지. 독자와 관객들로 하여금 그게 아빠라고 느끼게 한 장치가 뭐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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