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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일기/그곳에서

톰아저씨 트리하우스

by 은지용 2022. 4. 26.

 

 

아이들과 강화도에 다녀왔다.
올해에만 세번째다.
우리가 강화도에 가는 이유는 한 가지다.

톰아저씨 트리하우스.

 


처음엔 초지진도 보고 전등사도 들렀는데, 두번째 세번째에는 오로지 톰아저씨 트리하우스에만 머물렀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주말예약이 하늘의 별따기가 된 곳이라 또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찬바람이 불어야만 예약이 가능해질 것 같다. 한동안 못갈 것 같은데 이쯤에서 톰아저씨 트리하우스에 대해 기록해둘까 싶다.

톰아저씨 트리하우스는
강화도 마니산 산자락 아래,
서해바다 바라다보이는 산기슭에 있다.
여기에 톰아저씨라는 사람이 만든 놀이터가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짚라인, 미끄럼틀, 모래놀이, 그물놀이 등의 놀이기구와 트리하우스가 몇 채 있다.

트리하우스가 대략 6~7채, 별모양 창문이 있는 건물집 1채 정도 되나. 식당이나 바베큐 시설은 없다. 숙박하는 것도 아니다. 미리 어느 집을 골라 예약하고 계산을 해두고, 가서는 그냥 놀다가는 것이다.

 

이 단순해보이는 놀이터와 나무집이 아이들에게는 아주 특별하다. 1월부터 4월까지 3번을 다녀왔고, 짬만 되면 또 가자고 성화다.


*있는 그대로. 그러나 제각각 다르게*

 

나무집들은 제각각 이름이 있다.
하품하는 티라노, 달집, 세모집, 벚꽃머리집, 별꼴하늘창집, 숲속 오두막 1동과 2동. 더 있던가. 확실히 모르겠다. 이 중에 별꼴하늘창집, 달집, 숲속오두막 1동에 머물렀다. 세 곳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각각의 나무집들은 어쩜 이렇게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지. 내부도, 디자인도 각각 하나의 생명체 같다.

우리가 머물러본 곳 가운데 '달집'은 나무 위에 지은 집인데, 그 나무의 굵은 나뭇가지가 집 내부에서는 테이블 다리로 쓰인다. 트리하우스 놀이터에는 거의 모든 것은 '어지간하면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쓰였다. 나무 위에 지은 집들이다보니 공간이 좁기도 하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어른인 나의 시선으로는 공간 그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다. 제일 평범한 곳이 별꼴하늘창집과 숲속의 오두막 1,2동일 것이다.

 

별꼴하늘창집은 일반 건물집으로 펜션에 놀러온 느낌이다. 여기엔 특별한 다락 공간이 있는데, 그 곳 계단의 난간도 나무가 '생긴 그대로' 만들어졌다. 울퉁불퉁 삐죽빼죽 나뭇가지가 그대로 쓰여있다.

못난 내 모습도 인정해주는 주인장의 마음인걸까.




별꼴하늘창집은 그 다락공간에 별모양 창문이 천장지붕에 있다. 그 창에서 착안한 이름같다. 나에겐 별 모양 창보다는 거실 전면 커다란 통창이 훨씬 강렬했다. 저녁무렵, 우뚝 솟은 마니산에 물드는 석양과 산과 바다 사이의 넓은 논밭 공간, 저 앞쪽 우사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이런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겨울, 톰아저씨 트리하우스 첫 방문 때 누군가의 사정으로 예약이 취소되어 이 집과 인연이 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 때 숲속오두막에 머물렀다면, 아마 추위에 질려서 그곳에 다시는 안갔을지도 모른다. 당시엔 제일 따뜻하고 유일하게 내부 화장실이 있는 집이 별꼴하늘창집이었다.

 

4월 방문 때에는 숲속오두막집도 매우 좋았다. 좀 더 더워지면 벌레를 견딜 수 있어야 할 것 같긴 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노력이 따른다. 숲속 요정이 되려면 겨울엔 추위, 여름엔 벌레, 평소엔 불편함을 극복해야 한다.


*톰아저씨라는 사람*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공간. 그 공간을 만들고 채워가는 톰아저씨라는 사람도 이 곳의 핵심 소프트웨어다.

귀 아래로 내려오는 곱슬머리의 톰아저씨라는 사람이 그 곳에 항상 있었다. 전신 작업복을 입고 워커를 신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공간을 만들며, 공예프로그램과 다같이 모여 모닥불 피우는 시간을 운영하는 주인장이다.

사람들은 그를 큰 톰아저씨라고 부른다. 작은 톰아저씨도 있다고 한다. 얼핏 두번째 방문때 새로운 미끄럼틀을 열심히 만드는 누군가를 본 것도 같다. 언젠가 오전 10시쯤 도착한 날에는 큰 톰아저씨한테서 전날의 술냄새를 맡은 적도 있다.

큰 톰아저씨를 우리집 큰 아이가 아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이처럼 대한다. 아저씨는 뭔가 하고 있으면 말 걸고, 농담하고, 유쾌하게 반응하고, 자잘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하기도 한다. 아이는 기꺼이 톰아저씨와 상호작용하면서 짜증도 내고 소소한 성취도 이룬다.

아이가 나무조각 40층쌓기를 몇번의 실패와 남탓, 분노, 눈물, 좌절 끝에 성공했는데, 이 과정은 사실상 톰아저씨의 '성공하면 선물줄게' 코멘트와 '동생몫까지 감안한 핫초코 2잔 선물'로 그 시작과 끝을 맺었다.

세번째 방문 때에는 공예시간에 쓸 작은 도토리 모자를 모아달라고 부탁하셨고, 그렇게 모아갔더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멘토스를 대가로 받기도 했다. 최근 그 공간에 임시보호중인 푸들 한마리가 생겼는데, 아이가 강아지 앞에서 서성이며 어쩔줄 몰라하면 강아지 간식을 아이 손에 슬쩍 쥐어 주신다. 둘째 이야기다.

내 기억엔 톰아저씨가 안경을 쓴 것 같은데 애들은 아니라고 한다. 위의 두개는 아이들이 그린 것, 아래그림은 나의 기억. 아이들이 그린 톰아저씨는 임시보호중인 푸들 '나무'와 함께있다.


톰아저씨 트리하우스에는 나뭇가지를 이용한 공예 프로그램이 있다. 비용은 트리하우스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 공예 시간, 이 때 아저씨가 강조하는 것은 나뭇가지 모양을 가능하면 그대로 살려서 쓰는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나뭇가지를 꺾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하는게 아름다움의 핵심이란 얘기가 처음엔 와닿지 않았다.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새로워서 마음에 걸리적 거리긴 했지만 착 붙지 않고 겉도는 말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공간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가능하면 원래 생긴 모양 그대로. 꺽어지고 뻗어간 모양 그대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적절한 곳에 배치해주고, 약간의 색깔과 터치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닌, 재료 본연의 특질을 재배치해주는 역할이랄까. 내가 할 일은 완전히 통제하여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그대로 슬쩍 어딘가에 놓는 것.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렇게 빛날 수 있는 곳 찾아주기.

그와 얘기를 나눠본 적은 별로 없다. 공간에 도착하면 아이는 알아서 톰아저씨를 아는체하며 논다. 나는 형식적인 등록절차가 끝나면 예약한 나무집 인근에 머물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가만보면 이 공간을 더 잘 이해하려면 그를 인터뷰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만 이해할란다.

그와 그 주변사람들이 이 공간을 만들고 가꿔나가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만족할란다. 이 팀은 확실히 내가 만들기 어려운 공간을 제공해준다. 갑자기 알랭드보통의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 떠오르네…


 

*관용의 원천*

 

공예 프로그램 이후 모닥불에 모여서 마시맬로우를 구워먹는 시간도 있다. 마시맬로우 외에 천원정도의 추가금액을 내면 가래떡과 소세지를 구워주시기도 한다. 우리집 아이들은 컵라면과 소떡소떡 먹을 수 있는 하루라는 것 자체에도 완전히 열광한다.

모닥불 시간은 알아서 참여해야한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여기는 뭐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가 없는 곳이다. 알아서 참여하고, 알아서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안부르고 시작했다고 아이들이 섭섭해했는데, 이젠 알아서 잘 찾아간다.

세번의 방문에서 공예프로그램 한 번 참여한 것 외에, 나는 모닥불타임도 공예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나무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도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 놀이에 집중하느라.

아빠가 좀 같이 다녀주기는 한다. 아마 아이들이 조금만 어렸다면 나도 따라다녔어야할 것 같다. 거미줄 모양의 그물, 새둥지 모양의 전망대,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다리 미끄럼틀, 마녀빗자루 모양의 짚라인 태워주고 밀어주고 보살펴줬어야겠지만.

쨌든 난 거기서 자유다.

책도 보고, 끄적이기도 하고, 원서 필사도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곤 한다. <월든> 필사에 아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나도 또 가고싶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관용적 자세는 자기만족의 시간 위에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트리하우스에 다녀온다해서 좋은 부모가 되진 않겠지만,

왠지 마음이 쬐~끔 넓어지는 느낌이다.



*톰아저씨 트리하우스에서는 요일에 따라 4~7시간을 머물 수 있다. 컵라면만 판다. 음료수와 커피 등이 인원수만큼 제공되고, 겨울에는 고구마와 난로가 준비되어 있다. 쑥떡은 사시사철 베푸시는 듯 하다. 쑥떡과 자몽에이드가 맛있다.

*11~17시까지 머무는데 공간에 따라 14만원에서 20만원을 지불한다. 공예프로그램, 마시맬로우 모닥불 타임, 음료 인원수만큼, 쑥떡 한접시 등이 포함된 가격으로 추가금은 컵라면과 소떡소떡꼬치 정도. 사용시간은 시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듯 하다. 전날 트리하우스 지역 비예보가 있으면 취소 가능하다.

*예약은 동키앱을 통해서만 받는데. 동키앱은 참 신세계다. 아이들 대상으로 한 경험프로그램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주말 예약은 날이 좋아지면서 정말 치열하다. 혹시 취소분있나 짬짬이 들어가보는데, 쉽지 않다.

*톰아저씨가 본인 아이들 놀이터 만들어주다가 업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본래 목수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인스타감성도 뚝뚝 떨어진다. 디테일이 어느정도냐면 마녀빗자루 짚라인에는 엉덩이골까지 파여있다.

*도대체 애들이 뭐가 즐거운걸까, 신기한 면도 없잖아 있다. 못난 모습도 그대로 인정해주는 밑바닥에 깔린 그 분위기 때문인가. 하루종일 그냥 노니까 좋은건가. 왜 좋은걸까. 며칠 지나서도 문득문득 얘기한다. 너무 좋다고.

*4월 방문 때에는 '나무'라는 이름의 작은 강아지를 임시보호중이었다. 순하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푸들 '나무'에 둘째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톰아저씨 트리하우스에 머무는 시간 내내 '나무'주변을 서성였다.

*4월 아이들 일기에 묘사된 바로는 '북슬북슬'하고, '귀엽고 고집센 까만 푸들', '앉으라고 하면 앉는' 강아지다. 또 공 물고 나뭇가지 물어오는게 재미있었으나 나중에는 빈 집의 쓰레기, 과자까지 물고나와 감당이 어려웠다고 한다.

 

*김밥, 볶음밥, 기타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가면 하루가 편안하다. 놀다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양말이 엄청나게 지저분해지기도 한다. 여벌옷 준비해서가면 아이들 놀 때 마음도 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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