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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를 녹음하다 첫 팟캐녹음과 종교개혁급 후기의 기록 팟캐스트를 해보자고 했다. 책을 읽고 와서 떠드는 건 지난해부터 계속 해온 일이다. 고전소설 골라서 읽고, 쓰고, 만나서 떠들었다. 책 얘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V클럽 불금온토 때부터 짐작은 했었지만, 정말 만날 때마다 눈물 쏙 빠지게 웃다 왔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기억을 되돌리려 해 보면,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 빠진 기분은 아니고 뭔가 충전된 기분이었다. 존중받으면서도 툭툭 건드려진 기분. 표층부터 심층까지 제대로 털어낸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엄지들의 책 수다를 녹음한다 했을 때 별로 부담이 없었다. 오히려 즐거운 책 수다를 기억하기 좋겠다 싶었다. 남들에게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사람이 신나면 됐지뭐 싶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 2023. 6. 18.
"Such beautiful shirts" chapter 5 It makes me sad because I've never seen such - such beautiful shirts before. p.92 F.Scott Fitzgerald, Scribner 개츠비와 데이지의 셔츠쇼가 나오는 챕터다. 어렸을 때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가던 장면. 왜 셔츠를 부여잡고 울어. 이번엔 와닿을까 싶어 기대하고 봤는데. 역시나 잘 모르겠다. 그 좋은 셔츠들. 톰은 안샀나? 따지자면 대대로 부자인 톰이 개츠비보다 훨씬 돈이 많을 것 같은데. 데이지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하며. 아름다운 셔츠를 안고 왜 우나. 이렇게 예쁜데 자기 것이 되지 못하니까 우는 것 같긴 하다. 톡방 누군가는 '개츠비 왜 이제야 내게 왔어'의 슬픔일 수도 있다 했다. 오래.. 2023. 6. 12.
"Little Montenegro!" chapter 4 결정적 순간__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쟁이를 알아본다. 개츠비가 옥스퍼드 나왔다는 말을 조던 베이커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불가능한 거짓말쟁이 조던은 진작에 알아봤었다. 7월 말의 그 날, 닉 역시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랬었다. 결정적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그와 여섯 번쯤 대화를 나눴는데, 실망스럽게도 그와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어떤 신비로운 거물일 거라는 첫인상은 점점 사라지고 이제는 그저 한동네의 호화로운 여관집 주인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이렇게 난데없는 드라이브가 시작된 것이다. 웨스트 에그로 가는 길에 개츠비는 힘을 잔뜩 준 말을 널어놓다가 채 끝맺지도 않고 갈색 양복을 입은 자기 무릎을 불안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봐, 친구." 그가 불쑥.. 2023. 6. 11.
공예의 즐거움 - 안국동 공예박물관 주변 안국동 탐방 오전에 출발했다. 집 앞 연못에 수련이 피어있었다. 아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사진 찍는 김에 가는 길 짬짬이 너의 기분을 메모해 보라고 했다. 기행문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하철에서는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초5 국어 기행문 페이지를 굳이 찾아서 보여줬다. 초 5 교과서에서 얘기하는 기행문의 3요소: 여정, 견문, 감상. 아이의 기행문 쓰기에 도움이 되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기행문에 겁은 먹지 않았던 것 같다. 6월 6일 현충일. 남편은 출근했고, 태극기는 진작 달았다. 집 앞 도서관은 문을 닫았다. 첫째는 이번주 기행문 수행평가를 앞두고 있었다. 기행문 과제가 주어지자마자 분명 머리 싸매고 '못 쓰겠다' 통곡할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 서울 나들이 가자. 기행문 .. 2023. 6. 10.
빨강머리 앤 「누가 이런 아이를 집에 두고 싶어할까?」 앤이 못마땅했다. 앤은 감수성 넘치고 들뜨기 잘하는 아이였다. 내가 앤을 만난 것은 책 보다 TV시리즈가 한참 먼저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만화는 재미있게 봤는데 캐릭터는 사실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앤의 식탁을 차리고 호들갑 떨며 좋아한 마당에 고백하자면, 그녀 특유의 소란스러움, 수선스러움이 참 불편했다. 앤의 상상 속 새하얀 결혼 드레스에 대한 환상에는 속마저 거북했다. 비교적 모범생인 시절에 TV를 봐서일까. 그 정서적 널뛰기와 아름다움의 추구, 되바라진 말투와 지나친 수다가 만연하는 사회는 지양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 것은 피해야 할 사회악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다. 아마 나는 꽤나 억압된 여자아이였던 것 같다. 다 업보다. 뒤늦게 결혼하여 태어난 첫째가 엄청난 감정증폭기였다. .. 2023. 6. 2.
크림 브륄레 42 보통의 일상이었다. 어제 출근 후 현재 회사에서 제작중인 물품의 수출일정을 고심했다. 12일 배로 나가는 것이 예정된 순리인데, 좀 더 일찍 5일 배로 나가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더 빨리 나가면 이달 안에 돈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원료 구매 때 차용한 단기채무 정산과 이런 저런 할 일 처리 및 여타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될테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우선 5일 출항일이 연휴 등으로 연기되고, 연휴에 누군가 잠깐 출근해서 물건 상차를 할 수 있다면, 등등의 가능성을 따져보다가. 에잇. 그만 하자 싶었다. 예정대로 12일 배로 내보내고 월말에 돈이 들어오길 기대하자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 날 아침 재난문자 해프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 계획들.. 2023.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