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94

이방인에서 한 구절 그 개의 진짜 병은 늙음인데 늙음은 낫는 것이 아니었다. 알베르 까뮈 민음사 p.62 2023. 4. 10.
이방인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에서는 세상 편견 없고 담백한 뫼르소가 이야기를 한다. 저 첫 문장. 양로원에서 살던 엄마의 부고를 전하는 그의 독백은 몇 번을 봐도 군더더기 없이 강렬하다. 장례식을 위해 이틀간의 휴가를 신청하는 자리에서 사장에게 하는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라는 말까지 어이가 없다. 누군가 이 책을 소개할 때 '사춘기 아이들에게 뿅망치 같은 책'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내가 처음 이 책을 만난 것도 고등학교 교실 뒤편 학급문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이 세상이 이상하다고 심각하게 느낄 때, '어 맞아' 하이파이브 해 주는 책 같았달까. 뭔가 충격적으로 위로가 되었던 느낌만 남았었다. 미풍양속에 대해 얘기한다면, 은 결코 모범사례로 활용되지.. 2023. 4. 9.
이방인 「밀크 커피를 마셨다」 고소한 라테를 좋아한다. 산미 없이 고소한 커피에 우유를 탄 것을 특히 좋아한다. 고소한 것으로 부족하고 '꼬소꼬소'해야 한다. 따끈한 것도 좋고 얼음소리 나는 차가운 것도 좋다. 시럽을 넣는 것보다는 원두 자체를 달콤하게 블렌딩 한 것을 선호한다. 알베르 까뮈도 라테를 좋아할까. 그의 소설 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밀크 커피를 좋아했다. 편견도 없고 취향도, 주장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세상 쿨한 남자 뫼르소가 밀크 커피만큼은 확실히 좋아한다고 했다. 뫼르소는 엄마의 부고 전보를 받고 찾아간 양로원에서도 밀크 커피를 마셨다. 관리인은 밤샘 직전에 식사를 권했고, 뫼르소는 거절했다. 그러자 밀크 커피를 권했고, 뫼르소는 수락했다. 밤샘 직후에도 한 잔 마셨다. 그가 그때 그것을 거부했다면. 커피 마신 후 자연.. 2023. 4. 9.
변신 「그것은 사과였다」 카프카 은 색깔로 치자면 대체로 칙칙하다. 대체로 갈색이거나 잿빛인 이야기 속에서 분명한 색감을 주는 것 중 하나가 사과다. 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딱딱한 껍질을 한 벌레가 된 이후 아버지가 그를 향해 물건을 던진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레고르가 식구들을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공격했다. 식탁 위에 있던 사과를 주머니에 가득 채워갖고 와서. 그때 그 바로 곁에 무엇인가가 가볍게 던져져, 날아와 떨어지더니 그 앞으로 굴러왔다. 그것은 사과였다. 곧 두 번째 사과가 뒤이어 날아왔고, 그레고르는 놀라서 멈춰 섰다. 아버지가 사과로 자기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기로 결심했으므로 더 달려봐야 소용이 없었다. 카프카 민음사 p.62 아버지가 던진 빨간 사과가 그레고르의 등에 박혔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말려서 소동은.. 2023. 3. 23.
변신 「그가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데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나의 변신을 회상한다. 둘째가 아직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2시간 이상 걸리는 미용실 행차도 버거웠다. 긴 시간 비울 수가 없었다. 당시 내 머리카락은 보통 덥수룩하고 매우 길었다. 어느 날 큰 마음먹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예약해 둔 펌을 했다. 집을 떠난 시간은 대충 2시간. 산뜻하게 머리를 자르고 펌을 한 후 집에 돌아왔다. 달라진 스타일이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가벼워진 머리에 기분이 좋았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 반응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달라진 내 머리카락을 본 둘째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엄마가 아니라고. 엄마 돌려달라고. 나는 계속 나인데, 몇 년씩 떠났던 것도 아니고, 단 두 시간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짧아졌을 뿐인데, 엄마가 아니란다. 황당하고 불편했다. 내 얼.. 2023. 3. 19.
화씨 451/ Time has fallen asleep in the afternoon sunshine. 책을 불태우는 세상. 소방수대신 방화수가 있는 세상. 방화수의 호스에서 물이 아닌 등유가 나오는 세상.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는 세상. 천천히, 책읽기가 불법인 곳. 누가 책을 보면 신고된다. 몬태그는 방화수다. 사이렌이 울리면 신속히 출동해 책을 태운다. 책이 불타는 온도 약 232C 몬태그는 방화수. 그 날도 몬태그는 출동했다. 평소와 조금은 달랐다. 동네 산책하던 유별난 아이가 요즘 안보여서 신경이 좀 쓰였다. 또 출동한 곳에 아직 그 범죄자가 있었다. 보통 경찰이 범죄자를 데려간 뒤에 방화수들이 나머지를 청소하듯 불태워버렸는데. 그날은 달랐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뭔가 어긋났다. 저 늙은 여자가 신성한 의식을 망치고 있다. 동료들은 쓸데없이 시끄럽게 떠들고 웃고 농담하면서 아래층에서 말없이 원망에.. 2023.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