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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하는데」 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들도 사람의 감정만큼 변덕스럽지는 않다. 나는 생명 없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으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 이 목적을 위해 휴식도 건강도 다 포기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으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하지만 다 끝나고 난 지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내가 창조해낸 존재의 면면을 차마 견디지 못하고 실험실에서 뛰쳐나와 오랫동안 침실을 서성였지만, 도저히 마음을 진정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p.72 문학동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물체가 눈을 뜬 순간, 도망갔다. 그 무책임함이 어이없고 화나면서도 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내가 만든 무언가의 면면이 끔찍했던 적 있으니까... 2023. 1. 8.
프랑켄슈타인 「아름다움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무한한 수고와 정성을 들여 빚어낸 그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괴물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사지는 비율에 맞춰 제작되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했다. 아름다움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그 누런 살갗은 그 아래 비치는 근육과 혈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은 출렁거렸고 이빨은 진주처럼 희었지만, 이런 화려한 외모는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덕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리고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과 대조되어 오히려 더 끔찍해 보일 뿐이었다. p.71 문학동네 외모는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이름이 아니다. 책에서 기괴한 피조물을 만든 생명과학자의 이름이다. 그 피조물은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키는 컸다. 빅.. 2022. 12. 29.
프랑켄슈타인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서리와 눈에 둘러싸여 있으니, 여기서는 얼마나 시간이 느리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기획을 향한 두번째 발걸음을 디디고 있습니다. 배를 한 척 빌렸고, 지금은 선원들을 모집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답니다. 이미 고용한 선원들은 신뢰해도 좋을 것 같거니와, 뭐니뭐니해도 거침없는 용기만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채워지질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 그 부재는 무엇보다 혹독한 불행으로 느껴지네요.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거릿 누님. 성공에 대한 열의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 환희에 동참해줄 이도 없고,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들을 종이에 적을 수야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을 소통하는 데는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공.. 2022. 12. 24.
고전의 아우라 엄지작가 시작하기 명화를 실제로 볼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다. 보스턴 미술관에서 고갱과 모네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마음에 쿵하고 무엇이 닿았던 것 같다. 과거 언젠가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만났던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나는 기억한다. 나보다 오래 생존해온 그림, 음악, 이야기에 서린 힘은 꽤 세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지금 뿐 아니라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이 고전 classic이다. 나는 고전에 마음이 떨린다. 나를 우주의 먼지로 만들었다가, 또 아주 진귀한 존재로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 오랜 시간 그것과 교감한 사람들의 울림이 수없이 덧칠되어, 한없이 무겁고도 무한히 가벼운 고전에 마음이 떨린다. 그러나 고전은 솔직히 혼자 읽어내기 버겁다. 술.. 2022. 12. 21.
Crying in H Mart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Michelle Zauner. Vintage. "Are you Chinese?" "No." "Are you Japanese?" I shook my head. "Well, what are you then?" (p.95/ Vintage) 나는 그 아이에게 아시아 대륙에는 두 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대답도 못했다. 내 얼굴에,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존재로 읽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무슨 외계인이나 이국적인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럼 넌 뭐야?"는 열두살인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고, 존재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이고, .. 2022. 12. 11.
가슴 아픈 사건 2022년 10월 한달 간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을 읽었다. V-club 선생님이 텀블벅 펀딩으로 발행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매일 아주 짧은 분량 - 10줄에서 20줄 내외- 원서를 읽고 녹음하고, 생각하고, 되짚어보고, 짧은 느낌이나 생각을 톡으로 나누고, 그러면서 또 되짚어보게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방에 10명 내외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 마지막 챕터를 읽고 제임스 더피의 완벽한 침묵과 어둠 속에 함께 잠길 때 즈음이 할로윈이었고, 이태원 참사 사건이 발생했다. '가슴 아픈 사건'이란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일. 소설 속 신문기사와 그 제목처럼, 당사자에게는 저 단어와 문장으로 닿지 않는 슬픔, 분노, 허망함, 안타까움, 그리움이 있을 것이나. 나로썬 그 근처도 갈 수 없을 것이다. 더피씨의 슬.. 2022.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