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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근에 고리오 영감을 봤고. 데미안을 들춰봤고. 변신을 읽어내렸고.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을 경험하고 있다. ​ ​ 발자크는 현재의 나와 내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게 한다. 우아한 백조를 가리키며, 그 고귀한 몸짓과 깃털 사이사이 벼룩과 묵은 때의 흔적을 보여준다. 수면 아래 끊임없이 계속되는 동전 소리 가득한 발길질도 함께. ​ 헤세는 어린 시절 아이의 나를 보게 한다. 파묻혀있던 내 원형을. 괜찮으니까 묻어두지 말고 들여다보라고. 고유의 감각과 거울을 믿지 않던, 수줍은 아이를 보여준다. ​ 카프카는 내게 뭘 요구하지 않았다. 너무 달리지만 마. 가끔 쉬었다 가면 어때. 변심하지 않았던걸 알려주려면 절대 변신하면 안돼. 뭐 그게 네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고 있으라고. 어깨를 한번 툭 치고 갈 .. 2023. 3. 12.
고리오 영감 「마음을 단번에 비워버리면 파산하고 말아요」 꽤 오래전이다. 20대 시절 경기도 어딘가 목장주들이 모인 자리에 갔었다. 왜 하필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상이 목장주였을 뿐 그냥 그렇고 그런 일반강좌가 열리던 공간이었다. 어느 단체인지 회사인지 농가 대상으로 교양강의도 하고 상품 홍보도 하는 그런 곳이었던가. 당시 나는 항상 마감에 쫓기며 시간이 부족했는데도, 또 소 한 마리 키우지 않았지만, 그 날 어쩌다가 한가롭게 거기서 그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의 요지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식들한테 집이나 땅을 일찌감치 물려주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 때 강사가 말하길. 자식과 손자손녀가 놀러올 때 마다 손에 돈을 조금씩 쥐어주면 자주 찾아오겠지만, 한 번에 집을 사준다거나 하면 절대 찾아올 일 없을 것이라고. 자식들 꼴보기 싫으면 한 번에.. 2023. 3. 9.
고리오 영감 「행복은 여자들의 시」 고전 속 여자, 남자, 또는 사람 머리카락이 그 새 많이 자랐다.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머리카락은 내 피부만큼이나 푸석푸석하다. 겨울바람이고 봄바람이고 내 몸에서 수분을 가져가는 데에는 전혀 봐주지 않는다. 모근마다 넘쳐나던 힘도 나이가 들면서 자꾸 빠진다. 길어진 머리카락들이 무게를 못 이기고 더 납작하게 엎드리면, 내 얼굴의 생기는 완전히 빠져나간 듯 보인다.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에 고집 한 방울 약이라도 쳐주면서 가꿔주려고.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왜 뽀글뽀글 파마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마흔이 넘고 보니 그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간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들은 힘이 있다. 나이 들었다고 맥없이 쳐져있지 않고, 얇아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맨 두피를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릴 .. 2023. 3. 4.
고리오 영감 「자, 다들 식사하세요. 수프가 식겠어요」 https://brunch.co.kr/@7bef61f7eaa2497/19 자, 다들 식사하세요. 삶은 부엌, 또는 식사와 식사 사이에 산다 | 끼니를 챙겨먹고 나와 드라마 같았던 책 에 대해 끄적인다. 책을 처음 펼친 것은 어느 화요일 저녁, 식전이었다. 이 책 사 brunch.co.kr 아침을 먹고 나와 드라마 같았던 책 에 대해 끄적인다. 책을 처음 펼친 것은 어느 화요일 저녁, 식전이었다. 이 책 사이사이에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 밥이 있었다. 에서 하숙집 보케 부인도 말했다. 고리오 씨가 비참하게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직후에. 자, 다들 식사하세요. 수프가 식겠어요. 삶은 식사와 식사 사이에 있다. 그 사이마다 감정들이 펼쳐지는 이야기, 연극, 가끔 시詩가 되기도 하는, 그것이 인생이다... 2023. 2. 26.
지킬앤 하이드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황」 -지킬 박사가 어스시의 게드였다면- 이름이 아주 중요한 세상이 있다. 어슐러 K. 르 귄의 소설 의 세상이다. 지킬과 하이드 얘기의 배경이 되는 1800년대 후반 영국 런던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실 이 책을 보는 내내 어스시의 마법사 첫 번째 이야기가 떠올랐다. 타고난 자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다가 그림자를 문 밖에 풀어놓게 되고, 그 공포스러운 그림자의 정체를 풀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랬던 것 같다. 어스시 Earthsea 세계에서는 사물의 진짜 이름을 아는 것이 마법의 시작이다. 그 세상에서 이름은 누군가 흔히 불러주는 수단 그 이상의 뜻이 있다. 이름은 그 존재의 속성이다. 어스시에서 사물의 이름은 꿰뚫어보는 자만이 알 수 있도록 감춰져 있고, 진짜 신뢰하는 친구끼리만 자신의 이름을 공유한.. 2023. 2. 17.
지킬앤 하이드 「하이드 씨를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https://brunch.co.kr/@7bef61f7eaa2497/14 하이드 씨를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도서관 책에 낙서하는 하이드 씨 | 엄지작가 1기 멤버들과 지난달 말쯤 만났다. 지난 한 달간 몇 꼭지 끄적거리고 나눈 뒤라 더 할 얘기가 많았고, 책 이야기로 이렇게나 즐겁게 brunch.co.kr 엄지작가 1기 멤버들과 지난달 말쯤 만났다. 지난 한 달간 몇 꼭지 끄적거리고 나눈 뒤라 더 할 얘기가 많았고, 책 이야기로 이렇게나 즐겁게 떠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좋았다. 2월에는 와 을 읽고 쓰기로 했다. 지난번 수다 때 번역본 마다 뉘앙스 차이가 있다는 점으로도 신나게 떠들었기에, 이번에는 여러 여러 번역본을 빌려서 보고 싶어졌다. 민음사 번역본과 옥스포드 출판사의 영어 원서가 집에 .. 2023.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