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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그가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데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나의 변신을 회상한다. 둘째가 아직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2시간 이상 걸리는 미용실 행차도 버거웠다. 긴 시간 비울 수가 없었다. 당시 내 머리카락은 보통 덥수룩하고 매우 길었다. 어느 날 큰 마음먹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예약해 둔 펌을 했다. 집을 떠난 시간은 대충 2시간. 산뜻하게 머리를 자르고 펌을 한 후 집에 돌아왔다. 달라진 스타일이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가벼워진 머리에 기분이 좋았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 반응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달라진 내 머리카락을 본 둘째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엄마가 아니라고. 엄마 돌려달라고. 나는 계속 나인데, 몇 년씩 떠났던 것도 아니고, 단 두 시간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짧아졌을 뿐인데, 엄마가 아니란다. 황당하고 불편했다. 내 얼.. 2023. 3. 19.
화씨 451/ Time has fallen asleep in the afternoon sunshine. 책을 불태우는 세상. 소방수대신 방화수가 있는 세상. 방화수의 호스에서 물이 아닌 등유가 나오는 세상.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는 세상. 천천히, 책읽기가 불법인 곳. 누가 책을 보면 신고된다. 몬태그는 방화수다. 사이렌이 울리면 신속히 출동해 책을 태운다. 책이 불타는 온도 약 232C 몬태그는 방화수. 그 날도 몬태그는 출동했다. 평소와 조금은 달랐다. 동네 산책하던 유별난 아이가 요즘 안보여서 신경이 좀 쓰였다. 또 출동한 곳에 아직 그 범죄자가 있었다. 보통 경찰이 범죄자를 데려간 뒤에 방화수들이 나머지를 청소하듯 불태워버렸는데. 그날은 달랐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뭔가 어긋났다. 저 늙은 여자가 신성한 의식을 망치고 있다. 동료들은 쓸데없이 시끄럽게 떠들고 웃고 농담하면서 아래층에서 말없이 원망에.. 2023. 3. 14.
요즘 최근에 고리오 영감을 봤고. 데미안을 들춰봤고. 변신을 읽어내렸고.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을 경험하고 있다. ​ ​ 발자크는 현재의 나와 내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게 한다. 우아한 백조를 가리키며, 그 고귀한 몸짓과 깃털 사이사이 벼룩과 묵은 때의 흔적을 보여준다. 수면 아래 끊임없이 계속되는 동전 소리 가득한 발길질도 함께. ​ 헤세는 어린 시절 아이의 나를 보게 한다. 파묻혀있던 내 원형을. 괜찮으니까 묻어두지 말고 들여다보라고. 고유의 감각과 거울을 믿지 않던, 수줍은 아이를 보여준다. ​ 카프카는 내게 뭘 요구하지 않았다. 너무 달리지만 마. 가끔 쉬었다 가면 어때. 변심하지 않았던걸 알려주려면 절대 변신하면 안돼. 뭐 그게 네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고 있으라고. 어깨를 한번 툭 치고 갈 .. 2023. 3. 12.
고리오 영감 「마음을 단번에 비워버리면 파산하고 말아요」 꽤 오래전이다. 20대 시절 경기도 어딘가 목장주들이 모인 자리에 갔었다. 왜 하필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상이 목장주였을 뿐 그냥 그렇고 그런 일반강좌가 열리던 공간이었다. 어느 단체인지 회사인지 농가 대상으로 교양강의도 하고 상품 홍보도 하는 그런 곳이었던가. 당시 나는 항상 마감에 쫓기며 시간이 부족했는데도, 또 소 한 마리 키우지 않았지만, 그 날 어쩌다가 한가롭게 거기서 그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의 요지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식들한테 집이나 땅을 일찌감치 물려주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 때 강사가 말하길. 자식과 손자손녀가 놀러올 때 마다 손에 돈을 조금씩 쥐어주면 자주 찾아오겠지만, 한 번에 집을 사준다거나 하면 절대 찾아올 일 없을 것이라고. 자식들 꼴보기 싫으면 한 번에.. 2023. 3. 9.
고리오 영감 「행복은 여자들의 시」 고전 속 여자, 남자, 또는 사람 머리카락이 그 새 많이 자랐다.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머리카락은 내 피부만큼이나 푸석푸석하다. 겨울바람이고 봄바람이고 내 몸에서 수분을 가져가는 데에는 전혀 봐주지 않는다. 모근마다 넘쳐나던 힘도 나이가 들면서 자꾸 빠진다. 길어진 머리카락들이 무게를 못 이기고 더 납작하게 엎드리면, 내 얼굴의 생기는 완전히 빠져나간 듯 보인다.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에 고집 한 방울 약이라도 쳐주면서 가꿔주려고.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왜 뽀글뽀글 파마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마흔이 넘고 보니 그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간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들은 힘이 있다. 나이 들었다고 맥없이 쳐져있지 않고, 얇아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맨 두피를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릴 .. 2023. 3. 4.
고리오 영감 「자, 다들 식사하세요. 수프가 식겠어요」 https://brunch.co.kr/@7bef61f7eaa2497/19 자, 다들 식사하세요. 삶은 부엌, 또는 식사와 식사 사이에 산다 | 끼니를 챙겨먹고 나와 드라마 같았던 책 에 대해 끄적인다. 책을 처음 펼친 것은 어느 화요일 저녁, 식전이었다. 이 책 사 brunch.co.kr 아침을 먹고 나와 드라마 같았던 책 에 대해 끄적인다. 책을 처음 펼친 것은 어느 화요일 저녁, 식전이었다. 이 책 사이사이에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 밥이 있었다. 에서 하숙집 보케 부인도 말했다. 고리오 씨가 비참하게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직후에. 자, 다들 식사하세요. 수프가 식겠어요. 삶은 식사와 식사 사이에 있다. 그 사이마다 감정들이 펼쳐지는 이야기, 연극, 가끔 시詩가 되기도 하는, 그것이 인생이다... 2023. 2. 26.